한국말은 뭉특하다.
한국 사회에서 ‘잘 산다’는 말은 곧 ‘돈이 많다’로 읽힌다.
그래서 한국인들은 ‘돈’만 많으면 된다고 생각한다.
돈을 벌기 위해 매일 아침 꾸역 구역 출근을 한다.
돈을 위한 삶은 쉽지 않다.
출퇴근길은 늘 가축 수송이다.
낯선 이들 속에 몸을 구겨 높고 한참을 가다보면 한겨울에도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.
그런다고 돈이 벌리는 건 별개의 문제다.
내가 망한 뒤로 나의 ‘안부’를 궁금해 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.
‘내가 잘 살고 있다’는 소식이 진심으로 반가운 이들이 몇이나 될까.
특히 사회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‘잘 산다’는 소식에 질투와 시샘이 날 뿐이다.
지금 사용하는 카톡은 친구가 몇명 되지 않는다.
말 그대로 ‘친구’만 남겼다.
평생 올리지 않던 프사도 일부러 만들었다.
이 카톡엔 낯선 이가 접근할 수 없다는 일종의 선언 같은 거다.
회사에 다닐 때 카톡 친구 목록은 지옥철 같았다.
친구 같지 않은 친구들이 수천이 넘었다.
받고 싶지 않은 연락은 수시로 왔다.
진짜 친구는 그 속에 파묻혀 있었다.
지금은 원치 않는 연락은 받지 않는다.
가족일지라도 그렇다.
어느 순간 나는 사회에서 ‘증발’했다.
그리고 더 잘 살게 됐다.
매일 하늘을 보고 산다.
아침엔 해가 뜨길 기다리고
저녁엔 해가 지길 기다린다.
매 순간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느끼면서 산다.
내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은 ‘친구’에게만 알려지길 바란다.